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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 파주-제주 평화포럼을 마치고  - 도라산 역에서

입력 : 2018-11-23 19:14:39
수정 : 2018-11-23 19:27:36

<특집 2> 파주-제주 평화포럼을 마치고                                                                     

도라산 역에서

김광종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으로 가는 첫번째 역인 도라산 역에서

김포공항을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굽이치는 임진강이 보인다. ‘제주에서 파주까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평화포럼참석차 파주에 들어가는 길이다. 2년전 높낮이없는세상 회원들과 함께 평화와 통일의 물꼬를 터 보자는 의미에서 파주, 제주, 미국LA등에서 모여 포럼을 만든 지 2년째다. 그때만 해도 통일얘기 섣불리 했다가 친북으로 몰릴 것 같았던 박근혜 정권 시절이라서 사뭇 조심했던 때이기도 하다. 2년만에 평화분위기가 무르익는 상황에서 파주를 찾으니 감회가 새롭다.

2년이 흘렀는데도 굽이치는 임진강은 여전히 우리를 반겨준다.

굴곡진 한반도의 역사를 가장 많이 봐 왔고 아픔을 함께했던 임진강이다. 한국전쟁 막바지 싸움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고 결국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휴전선이 들어섰다. 치열한 전투와 주검들, 억울하게 죽어가는 어린 원혼들을 모두 목격했을 임진강. 그래도 말없이 흐르는 임진강은 티없이 맑기만 하다.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보지 못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이.

 

 

▲포럼 첫 모임은 조용필이 탄생한 라스트찬스에서 민들레의 공연으로 시작했다.

 

라스트찬스에서 마주한 조용필의 어린시절

첫 번째 행선지로 파주 장파리의 라스트 찬스라는 박물관 같은 카페로 들어갔다. 한때 기지촌의 미군클럽이었던 곳을 사진작가·설치작가인 윤상규씨가 복원하여 역사박물관처럼 다시 꾸민 곳이다. 흑역사도 잘 가꾸어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중요한 자산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곳이 가왕 조용필의 데뷔무대였기에 카페 한 쪽에는 작은 조용필 박물관을 만들어두었다. 조용필의 어린 시절 사진이 눈에 띈다. 제주에서, 파주에서, 미국 LA에서, 일산에서, 여주에서 속속 모인 일행들로 공간이 가득 채워졌다.

포크가수 강민정 민들레님의 촉촉한 가을노래, 통일노래를 들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합창으로 부르며 바뀐 남북화해시대를 실감했다. 윤상규 대표의 라스트찬스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60~70년대 조용필씨 노래하던 이야기, 기지촌 아가씨와 한 미군병사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도 들으며...

 

▲북녁하늘이 보이는 북중군묘지에 서상욱씨의 설명을 듣고있다.
 

이어 묵개 서상욱 한학자의 안내에 따라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인민군과 중공군 전사자들의 묘역을 찾았다. 일명 북중군묘지. 서상욱씨는 중공군과 인민군이 전쟁시에는 비록 적군이었지만 낮선 땅에서 쓸쓸히 죽어간 젊은 넋들을 위로하기 위해 10년이 넘게 묘역을 청소하고 가꾸어 왔다고 한다. 사소한 트집만 잡혀도 빨갱이로 몰리던 시절에 위험을 무릅쓰고 한 서상욱씨의 행동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묘역 한쪽이 텅 비어있어 이유를 물으니 박근혜정권 시절 중공군 유해 대부분을 중국으로 보냈기 때문이란다. 서상욱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중국과의 관계향상을 위해 갑자기 정해졌는지 급하게 유해만 퍼가고 묘역을 흉물스럽게 방치했었다. 도대체 죽은 영혼들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말하며 탄식했다. 적군이지만 죽은 영혼에 무례를 범하지 않는 것이 국가의 품격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다시는 이런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분향을 하고 민통선마을 해마루촌으로 들어갔다.

민통선 들어가는 길도 2년 전에 비해 출입 절차가 많이 수월해져 한시간 반 걸리던 초소를 20분 만에 들어갔다. 해마루촌 주민 이재석씨가 그동안 민통선 안에 사는 주민들이 수없이 싸워서 이뤄낸 결과물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제주, 파주, LA 통일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저녁식사 후 해마루촌 마을회관에서 파주-제주 평화포럼을 시작했다. 멀리 미국 LA에서 온 정연진 대표를 비롯한 AOK(Action one korea, 통일운동 단체) 회원들, 제주, 파주, 여주 등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빼곡하게 마을회관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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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실 감독이 '우리안의 평화'를 강조했다.

임현주 파주에서발행인이 진행한 이 날 포럼에서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이는 단연 83세 김대실 영화감독님이다. 북한을 방문해 찍은 통일기원 다큐멘터리 영화 사람이 하늘이다등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든 김대실 감독님은 현재 철조망 600라는 분단 영화를 제작 중이다. 80대의 고령 할머니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목소리도 카랑카랑하고 재미있게 말씀을 하신다. 평화와 통일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함을 공감했다.

 

 

 

 

 

 

 

 

 

 

 

멀리 타국에서 통일운동에 헌신해 온 AOK 정연진 대표님의 힘겨웠던 활동보고는 우리 모두를 숙연해지게 만든다. 유럽을 종주해 달리며 통일을 알려온 통일마라토너 강명구씨와 함께 북한을 종주하여 남한으로 넘어 오기 위해 북한에 입국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단다. 그동안 먹고 사는 일에 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내 자신이 살짝 부끄러워지는 시간이다. 파주활동가 이재석씨, 제주 김광종의 발제후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제주안주로 시작된 뒷풀이는 끝날 줄 모르고

파주-제주 평화 포럼을 마치고 이제 기다리던 뒷풀이 시간.

제주에서 어렵게 바리바리 싸 들고 올라간 말고기, 소라, 전복, 감귤 등 소중한 안주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새벽 두시가 넘도록 웃음소리가 끊이질 안는다. 역시 안주는 제주 것이 최고여!!

요즘 남북간 평화 분위기 탓인지 분단한국 최북단 파주 민통선 안에서의 밤이 더 정겹고 술맛이 절로 난다. 그동안 우리의 가슴을 짓눌렀던 분단의 아픔을 잠시라도 덜어낸 듯한 희망으로 가을밤이 익어간다.


 

▲김기호 지뢰제거연구소장의 안내로 민통선 안 야산에서 지뢰를 찾아 냈다.


아침 일찍 지뢰의 위험성을 알리고 지뢰를 제거하는데 온 힘을 바치고 있는 김기호 한국지뢰연구소장님의 안내로 실제로 지뢰가 엄청나게 묻혀 있다는 해마루촌 야산에 올라 지뢰를 직접 찾아 제거하는 현장을 보았다. 간단한 장비 하나만으로 10여분 만에 지뢰 두 개를 찾아 가지고 나와 위력을 설명하는 김기호씨, 보고 도 믿을 수 없어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지뢰가 묻혀있기에... 해마루촌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묻힌 지 오래되어 잘 터지지는 않지만 이 산은 그야말로 지뢰밭이란다. 새삼 전쟁의 폐해를 실감한다. 이 지역 주민들은 지뢰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하루빨리 이 전쟁의 잔해를 걷어내고 평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다.

 

▲ 모두 평양으로 가자!!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

전쟁 역사의 현장을 지나 북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역 도라산역으로 향했다.

2년 전에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쌓아 놨던 구조물들이 깨끗이 치워졌다. 표를 끊고 역사 안으로 들어가니 말끔하게 정리된 철로에서 금방이라도 평양행 기차가 올 것만 같아 한참을 기다려 본다.

그동안 이유 없이 서로간의 증오만 키웠던 70, 무고한 희생이 얼마나 많았고, 통한의 눈물을 곱씹은 이들은 또 얼마일까? 분단 마지막 기차역에서 북녘땅 철로를 바라보며 가슴을 짓누르는 돌이 무게를 더한다.

우리 민족은 5천만년 동안 하나였고 70년간 헤어져 살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분단현실이 버겁고 견고해 보여도 넘지 못할 벽은 아니다.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라는 도라산 역 간판이 새삼 눈에 아른거린다. 기차표는 끊었지만 끝내 평양행 기차는 오지 않았다.

 

▲ 분단 독일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의 부분을 갖다 놓고 남북 통일을 기원하는 기념비



 

▲도라산역 안에 세운 독일베를린 장벽을 기념비를 배경으로



이 역에서 열차타고 평양에 올라가 대동강변 소주한잔, 냉면 한 그릇 먹을 날을 기대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평화와 통일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바로 우리 마음속에서 시작된다.

도라산 역을 지나 백두산에 오르는 희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가 함께 간절히 원하면 꿈은 현실이 된다.

                         높낮이없는세상 대표, 서귀포신문 주간 김광종

 

▲장벽을 넘는 새들이 북으로 날고싶은 솟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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